커리어 10 주년 회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딱 10 년이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의 전공은 지금 하는 일과 거리가 멀지만, 복수전공 후 IT 업계로 전직한 계기를 설명하자면 글이 길어질 듯 하여 생략하겠습니다. 사실 갑자기 IT 업계에 관심이 생겨서는 아니었고, 예전부터 코드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기는 했습니다. (관련기사 - 직접 인터뷰 한 건 아니고, 공개된 정보를 통해 작성된 기사) 그래서 중학생 때까지는 장래희망에 프로그래머라고 계속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참 돌아서 오기는 했지만, 결국 IT 업계에서 일하게 되었고 10 년 간 여러 가지 업무를 해 왔네요. 심지어 최근 2 년 간은 팀 리더로서 일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팀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될 듯 합니다.
여러분은 커리어에서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이번 글에서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기억에 깊이 남은 순간들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회사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첫 회사는 네트워크 장비 회사였습니다. 제가 입사하던 당시 제가 입사한 회사에 신입 공채가 있었고, 공채를 통해 입사했는데요. 다만 3개월 간 인턴 후 채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긴장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첫 날, 대표님과 신입사원들이 모두 모여 면담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회사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맥락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 뒤의 내용은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일 하는 동안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보니 그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저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것은 제 자신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SDN 관련 세미나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 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개발하는 것에 따라 사람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고민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생각해 봐도 iOS나 안드로이드 OS를 개발하는 사람, 그 OS 위에 돌아가는 앱 개발자, 아니면 웹 사이트를 개발하는 사람이 고민하는 건 많이 다를 거에요. 개발 관련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참석하면서 임베디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프라 쪽으로 업무를 전환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계기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SDN 관련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를 주셔서 회사 밖으로 나가서 세미나를 듣게 되었습니다. Software Defined Networking의 줄인말인 SDN은,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로 네트워크를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네트워크 장비 내 기능을 개발 후 테스트를 하려면, 회사 장비실에 가서 장비를 구하고, 랜 케이블이나 광 케이블을 구해서 연결하고(심지어 광 케이블은 광모듈이라는 장비가 필요한데, 연결된 광모듈의 규격이 맞아야 서로 연결됩니다), 각각의 장비에 접속해서 설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AWS의 VPC를 설정할 때는 그렇지 않죠. VPC, 서브넷, Network ACL, Route Table 모두 AWS 콘솔에서 구성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AWS CLI나 Terraform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바로 나만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SDN에 대한 내용을 듣고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미나에서 들었던 것 중 또 기억에 남는 것은 OpenStack과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서버도 가상으로 올리고, 스토리지도 가상으로 올리고, 네트워크도 가상으로 올린다고? VirtualBox로 가상 머신을 만드는 정도만 알고 있었던 저에게는 신기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클라우드 컴퓨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AWS와 같은 클라우드를 사용해 보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다만, 그 때 다녔던 회사에서는 클라우드를 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간단하게 테스트 용도로만 사용해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앤 아버(Ann Arbor)에서의 해커톤
2017년에 잠깐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사실 공공기관에서 개발자로서 일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속했던 부서가 연구 부서여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기에는 좋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 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첫번째 미국 출장인데요. 외국에 나간 건 2016년에 친구와 오사카/교토 여행을 간 것이 전부였는데, 어쩌다 보니 인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출장을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간 곳은 미시건 주 앤 아버(Ann Arbor)에 있는 미시건 대학교였습니다. 델타항공을 타고 인천에서 디트로이트로,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니 앤 아버가 있었습니다.
교육 관련 기관 및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소속된 단체인 IMS Global(현 1EdTech)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였고, 애플리케이션 간 상호 연동을 위한 표준을 제정하는 목적이 크다 보니 하나의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시차 적응에 영어 듣기/말하기가 약하다 보니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더 많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해커톤이 있었는데요. 여느 해커톤같이 밤을 샌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IMS Global에서 제공하는 표준을 활용해서 하루 동안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샘플 JSON 데이터를 받아서 MongoDB에 저장하고, 간략하게 통계를 내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시연했습니다. 발표할 때에는 제가 영어 말하기가 안 되어서 저희 부장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다음 직장에서 진행했던 학습 분석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으로 보실 수 있겠습니다.
하루 동안 해커톤을 진행하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PHP, C#, 루비를 쓰는 회사들이 있는 것 같다.
- 혼자 뭔가를 하면 퀄리티를 올리기 힘들다. 좀 더 퀄리티를 올리려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 (아마도 혼자 오신 분 중에 간단하게 데스크탑용 앱을 만드신 분이 있었고, 사람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아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고향에서 일한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인턴/계약직으로서의 불안정성, 그리고 위에서 두번째로 생각했던 것 때문에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AWS Summit에서의 발표, 그리고 This is My Architecture
아이스크림에듀에 합류하면서, 학습 분석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AWS를 사용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제가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설계와 구축도 중요하지만, 운영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프라 구성도 점점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2019년 AWS Summit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2021년에는 AWS의 This is My Architecture에서도 저희 팀의 인프라 구성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추측이지만, 팀의 초기에 합류해서 혼자서 초기 인프라 설계, 구축, 운영을 담당했고, 이 과정에서 AWS의 여러 관리형 서비스들을 이용했던 점 덕분에 학습 분석 인프라를 소개할 기회를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This is My Architecture는 녹화 후 업로드되는 영상이라 걱정이 없었는데, AWS Summit은 정말 많은 분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어서 많이 긴장 되더라구요.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10년
전 직장의 사정으로 저의 의지와 상관 없이 회사를 나오게 되었는데요. 그 덕분에 살면서 처음으로 실업급여도 신청해 보고,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지금 재직중인 회사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어 보니 이제는 인프라, 소위 말하는 DevOps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동일 직군의 여러 사람들과 비교해 봐도, ‘나는 다른 회사의 비슷한 사람들에 비해 경쟁력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이직 과정에서 면접을 보다 보면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거든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성과로 증명해 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지난 10년을 돌아 보면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가끔씩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일을 하면서 경험한 소소한 성취감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은 성취감을 모아 큰 성취를 이루어 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